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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집 > 미암집 제9권 > 일기 >신미년(1571)
1월 2일
윤홍중 중임(尹弘中重任)의 편지가 왔는데,
“가만히 듣자 하니, 형께서 지금 빌려 살 집을 찾는다고 하더군요. 제 집이 다음 달 20일 이후에 아내를 데리고 흥덕(興德)으로 가게 되어 비게 될 것이니 몇 년이라도 들어와 살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웃도 있고 서책도 뒤적거릴 만한 것이 있으니 뜻이 있다면 몇 년 동안 빌려 드리겠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였다. 나는 새로 지은 집이 완성되지 못하여 근처 집을 빌려 살며 수리도 하고 이사도 들어갈 계획이어서 다른 데로 갈 틈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도타운 뜻은 잊을 수 없다.
1월 20일
영광(靈光) 윤홍중(尹弘中)이 서적을 보내 주며 오래 빌려 주겠다고 허락했다. 《당본강목(唐本綱目)》 50책, 《속강목(續綱目)》 22책, 《사기(史記)》 두 책갑 각 13책, 《전한서(前漢書)》 30책을 세 책갑에 나누어 넣은 것, 《주역》과 《모시(毛詩)》 각 14책, 《춘추집해(春秋集解)》 17책, 《한문(韓文)》과 《유문(柳文)》 각 15책, 《옥해(玉海)》 57책, 《맹자》 7책, 《대학》 1책, 《운회(韻會)》 12책, 《송감(宋鑑)》 16책, 《순자(荀子)》 2책 등 모두 298책이 왔다. 이공택(李公擇)과 같은 인자(仁者)의 마음이 있다고 이를 만하다. 두 개의 보관함에 나누어 넣어서 자리 옆에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