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려실기술 제8권 / 중종조 고사본말(中宗朝故事本末)
기묘당적(己卯黨籍)
윤구(尹衢)
윤구는 자는 형중(亨仲)이며, 호는 귤정(橘亭)이요, 본관은 해남(海南)이다. 을묘년(1495)에 태어나서 계유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병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 좌랑으로 있다가 죄를 입었다. 아들 홍중(弘中)과 의중(毅中)이 모두 문과에 급제했다.
○ 공이 주서로 임금의 명을 받아 영의정 정광필(鄭光弼)과 우의정 신용개(申用漑) 등의 집에 가서 정승될 사람을 가려 뽑고는 돌아와 승정원에 나가니, 승지 박세희(朴世憙)가 맞으면서 묻기를, “오늘 정승은 필시 안당(安瑭) 대감이지.” 하니, 공이 이에, “예” 하였는데, 복명하기를, “영상 정광필은 의논하기를 마음가짐과 일을 행하는 것으로 논하면 안당이 제일이다.” 하고, 우의정 신용개는 의논하기를, “직위의 차례로 말하면 김전(金詮)과 이계맹(李繼孟)이 있으나 안당이 마땅하다.”라고 했다. 이리하여 마침내 안당을 정승으로 삼았다.화가 일어난 뒤에 당시의 정승들이, “전날 정승을 뽑을 때에 신공(申公)이 이계맹을 천거했는데 공이 박세희의 말을 듣고 말을 고쳐서 복명했다.”고 지어내어 추문(推問)하여 박세희까지 가죄(加罪)하려다가 공만 파직하는 죄를 주었다. 공이 뒤에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계맹이 행검(行檢)에 구애되지 않아 여론이 단점으로 여겼으니 어찌 정승 후보로 의망하여 의논할 수 있겠는가. 다만 신문경(申文景 신용개의 시호)과 술 친구가 되어 서로 허여했을 뿐임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지라, 고의로 나에게 허물을 돌려 이회(而晦)박세희의 자 에게 죄를 주려고 했으나 다행히 임금께서 통촉하셨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