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肅宗) / 숙종(肅宗) 6년(1680)
5월 12일
최부(崔溥)ㆍ윤구(尹衢)ㆍ임억령(林億齡)ㆍ유희춘(柳希春)ㆍ윤선도(尹善道)를 배향(配享)하기 위한 서원(書院)의 건립을 청하는 이시철(李時哲) 등이 올린 상소의 사연에 대하여 방계(防啓)하는 예조(禮曹)의 계목(啓目)
1. 예조(禮曹)에서 올린 계목(啓目)에, “계하(啓下) 문건은 점련(粘連)하였습니다. 진사(進士) 이시철(李時哲) 등의 상소에, ‘증 도승지(贈都承旨) 신(臣) 최부(崔溥), 증 이조 판서(贈吏曹判書) 신 윤구(尹衢), 관찰사(觀察使) 신 임억령(林億齡), 문절공(文節公) 신 유희춘(柳希春), 증 이조 판서 윤선도(尹善道)를 위하여 서원을 건립하는 것을 청하고자 상소를 올립니다.’고 호소하였습니다. 지난해 3월에 계하한 일에 대하여 아직 회계(回啓)하지 못하였지만, 서원의 폐단에 대하여 말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근년 이래로 서원과 사우를 건립하는 일이 매우 시끄러워 만약 도덕과 학문으로 세상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서원과 사우를 건립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조정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지금 최부ㆍ윤구ㆍ임억령의 경우에는 혹은 문장(文章)으로 혹은 절행(節行)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나, 그 도덕과 학문의 깊이는 연대(年代)가 오래되어 지금은 상고하여 근거할 수 있는 사적(事跡)이 없습니다. 서원을 건립하여 존사(尊祀)하는 것은 사체(事體)가 중대하여 가볍게 허락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그리고 유희춘의 경우에는 이미 담양(潭陽)과 종성(鍾城) 두 곳에 서원을 건립하였는데, 담양에 있는 서원은 이미 사액의 은전(恩典)을 행하였습니다. 서원을 중첩해서 설립하는 것을 금하는 명령이 있었으니, 지금 또 서원의 건립을 허락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윤선도의 경우에는 사적을 상고하여 향사(享祀)하는 것이 마땅한지를 함께 논하지는 않았으나, 쓸데없는 말로 칭송하였으니 참으로 외람됩니다. 따라서 상소의 사연을 모두 시행하지 않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강희(康熙) 19년 5월 12일에 우승지(右承旨) 신(臣) 정재희(鄭載禧)가 담당하였는데, 그대로 윤허한다고 계하(啓下)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