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파표 및 족보 서문
1. 분파표
해남윤씨는 아래와 같이 8파로 구분되어 있으며, 해남윤씨대종중(大宗中) 처무(處務)상 사용된 공식 명칭입니다.
귤정공파(橘亭公派)는 어초은공파의 파조이신 어초은공 효정(孝貞)의 장자이신 귤정공 휘 구(衢)를 모시고 있습니다.


2. 족보 서문
壬午譜(一七○二)序文
海南尹氏族譜序
族之有譜至矣哉周之宗法漢之世表尚矣張程兩夫耶亦嘗以明譜收宗爲第一義皆所以重宗系而敦親戚也惟我外門尹氏出於海南盖自 鼻祖歷十二世而有號漁樵隱從事於錦南之門好學而積善乃發於 橘亭先生兄弟文章志操爲士林矜式其流風遺澤赫世彌昌名卿賢佐黼黻 王家至于 忠憲公尤有大焉道學忠節足以光前而詔後置祭田以繼親盡盡先祀設義穀以震貧之宗族報本撰亦可謂至矣而不幸南遷北謫席不暇煥譜牒草藁未及成書此子孫宗鬱所共爲根者余蚤孤鞠于外氏今又被 譴來兹縣念舊傷感之餘乃因舊譜草本廣搜勤訪補閑證訛肇 成我尹氏族譜天其或者有待於今日欲於是遠近諸族咸曰吾宗之盛事遂相與協謀鳩財力而鋟諸梓不其韙哉竊惟人之有父子有兄弟爲叔姪爲堂從鄙至百代之遠均是一源之親篤恤惟睦固人情之所同然者而祖先旣役後裔漸緊派無傳而名亦不相知此吾譜之兩以作也且夫子之子爲孫而同姓女之子亦爲孫而異姓雖有内外之合,自其初視之則莫非同胞中出也其天屬之恩實無異同於其間#4譜之所以譜異姓如同往也噫蘇允明之言曰觀吾之譜者孝悌之心可以油然而生矣凡我譜中之人,亦庶幾見吾譜而生敦睦之心交相惕慮大振厚風推源反本而無敢忽忘服窮情盡而無若塗人則周禮六行之美將復見於當世其亦裨補風化之一資歟崇禎紀元後七十五年壬午外孫青松沈檀謹識
<壬午譜序文譯文>
종족宗族이나 일가친족一家親族에는 족보族譜가 가장 중요한 것이니라。중국의 주나라 역사에서 보면 씨족氏族과 족종族宗의 내역來歷과 누세累世의 표적表蹟을 떳떳하게 적는 일일 것이다。중국에 장재張載와 정명도程明道 양선생兩先生도 역시 일찌기 명확하게 족보에 대소가大小家를 수록하는 일을 제일 첫째 뜻깊은 일로 하였고, 모든 자손들의 중요한 일로 종족지간 친척간에는 돈목할 것을 원칙으로 한 것이다.
저의 외가윤씨外家尹氏는 본관本貫이 해남海南이다. 위로 선조先祖에서부터 12세에 이르러서 호 어초은號 漁樵隱공이 계시니 금남錦南의 문하門下에 수학하시와 학문을 좋아하시고 선덕을 쌓으시니 그 유음遺蔭이 귤정선생橘亭先生 형제분에게 미쳐서 문장과 지조가 뛰어나서 사림들의 모범이 되고 그 유풍流風과 유택遺澤이 세상에 널리 빛났으며 높은 관직과 어진 상신相臣들이 대를 이어 국가를 도왔다. 충헌공忠憲公에 이르러 가정家庭이 빚나서 도학道學과 충절忠節이 있어 광채가 났었다. 그 다음으로는 선조제사先祖祭祀에 대하여 뜻을 가져 제수답祭需畓을 마련하여 설향設香하기 위하여 궁색한 종중에 양곡을 조달하였고 종족중에 빈곤한 친족이 있으면 구휼救恤하였다.
불행하게도 남방南方 귀향살이에서 늘 족보책자가 이루워지지 못한 것을 생각하던 차에 외가에 이르러 일찌기 근거를 찾아서 나를 키워 길러주신 외가댁에 늘 생각이 무겁던 차에 이로 인하여 족보를 널리 찾아 만들어 빠진것을 보충하여 증명하게 된 것이 내 외가댁 윤씨尹氏의 족보族譜입니다。
옛부터 이르기를 친족을 찾지 못함은 인간사 밖의 일로 옛이나 이제나 한가지 입니다。우리의 근본적인 일로 서로 협조하고 도모하여 재산을 모아 새겨서 그 이름이 망가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깊고 심오한 일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부자유친父子有親하며 형제우애兄弟友愛가 있고 숙질간叔姪間이 있으며 당숙질堂叔姪과 재종삼종사종再從三從四從이 있어 융성하게 이루어져서 백대지친百代之親이 한가지 뿌리로 근원을 이룬 것입니다. 친족지간에 있어서 환난지사患難之事에는 서로 근심하고 경사에는 서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돈목하는 인정이 넘쳐 있어야 합니다. 그런 고로 한 조상으로 하여 후예後裔가 끊기지 아니하고 이어가서 명성名聲이 그치지 아니하게 됨에 내 이 보첩譜諜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여식女息의 서랑婿郞의 내역도 비록 타성간他姓間이라고 할찌라도 기록해서 보게하며 이것이 동포지간同胞之間을 만들게 한 것입니다. 아! 소동파蘇東坡와 정명도程明道의 말을 빌린다면 내 족보로 말미암아서 효도와 공경의 도리를 나타내게 한 것입니다。무릇 외가댁에 기록된 가운데 사람들의 차례를 보면 돈목함이 유달리 나타나 있고 아름다운 우애와 친족간의 화목을 무한히 볼 수 있어 흐뭇함이 많습니다。지금도 많습니다。지금 사람들은 주례주공단周禮周公旦이 만듬과 육행六行 천지天地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아름다운 이치를 다시 보게 한 것입니다。더욱 좋은 결실을 이루워 영원히 이어져 가기를 바라 원합니다。
崇禎 紀元後 十五年 壬午秋 肅宗二十九年 檀紀四○三五年 西紀一七○二年에 外孫인 靑松 沈檀이 삼가 지음니다。
※沈檀 仁祖二十三年 一六四五 英祖六年 一七三○ 字 徳興 號 藥峰 追尤堂 孤山 尹善道의 外孫子 外祖膝下에서 자람. 官持平吏曹佐郎應教兵曹參判都承旨吏曹工曹判書大司憲漢城府尹蕩平策으로 工曹判書 判義禁府事 奉朝賀
己巳譜( 一九二九) 序文
人之有族生物自然之理族之有譜系世不易之道也別其祖之所出曰族明其孫之所分曰譜夫以一人之子孫漸至蕃殖支分干莖派列百家聞其姓而不知其派系識其名而不分其誰某此莫非族譜不明之致也惟我宗族雖僻在遐陬文章道德明顯於世冠盖簪纓闡揚于朝足爲士林之矜式可謂湖南之巨族也粤自壬午修譜以後略記派系行列各門支別最不分明矣于兹數百余年修譜之事,因遁未遑所謂派系名行無以考徵疎者愈疎遠者愈遠無異於尋常路人者幾希矣直粤者門議齊發大同譜一部修成爲期上系先祖下記後孫則此乃記宗族之史册也噫吾宗姓貫棠岳自鼻祖以下七世之墓所官啣無由攷證盖由於無文蹟可攷之致也曾所慨嘆處而自 令同正公以後雲仍漸蕃十餘代宗支派系記得分喝者賴其壬午一譜之力矣厥後數百年文字湮沒發起無人其實蹟實行無以記載使有志之人常有感歎之餘今此詢議僉同鳩財合力期成厥功番舊貫之上系詳記後來之下支刊年代之遠近本支之親疎其於繼49後之道庶有少補云爾因書以爲己巳譜序
是歲己巳陽月上澣 後孫 三夏 謹識
<己巳譜序文譯文>
사람에게는 일가 親族이 있는 것은 生物이 생긴 自然의 理致다。따라서 人間에는 族譜가 있는 것이어서 世上을 이어 내려온 不變의 道理이다。이에 따로 그 祖上에서 태어난 것이 일러서 宗族이며 各己 그 祖先에서 나누어저 이루는 것이 族譜이다.
대저 한 사람의 子孫으로서 점차 繁榮해 한가지가 나누어 千가지 즐기로 뻣는 것 같이 나누어진 派族은 數百家를 形成하게 된다. 이에 따라 그 姓氏를 묻고 系派를 묻는다면 모르는 일가 많고 그 이름이 不分明하며 또 누구인지를 알지 못함에 또한 族譜를 알지 못함이 없게 하고 明確한 것을 일러 알아 이르게 함이다. 우리宗族이 비록 멀리 南쪽에 있음에 쉽게 알지 못하여 궁벽한 곳에 살고 있으나 文章과 道德이 뚜렷한 姓氏라는 점은 世上에 뚜렷이 나타나 있되, 벼슬에 나아가신 祖上 어른이며 朝廷에서도 들추이나 巨族門閥이라고 말한다.
지난 옛날 壬午年에 譜册을 이룬 以後로 派別로 記錄하고 또 行列을 써서 밝히나 各門中別로 보면 가장 不分明함이 더러 있어 이를 밝힌 것이다. 이에 數百年동안 譜事의 일로 낡은 일에 미처 황황치 아니함에 이른바 名派系列과 考徵이 소원이 되는 것이 없어서 멀리하면 더욱 멀어지니 앞으 로 이를 찾는 이가 더러 있었다. 이에 門中宗親間에 論議가 되어 大同譜一部를 修訂힐 거슬 期約하고 上系는 先祖로 부터 아래로는 後孫에 이르기까지 宗親間의 來歷을 記錄한 册子卽譜册을 쓰게 하였다.
나 넉넉히 士林으로서 긍지를 지키니 넉넉히 말하여 湖南에 아! 우리 宗親의 姓氏의 貫籍은 棠嶽으로하여 위로 先祖以下七世의 基所와 官職의 名稱은 文獻上參議하기가 희미하여 어찌 이로 말미 암이 文蹟을 살피지 아니할 수 없는 것으로만 볼 수 없으나 이러한 點을 살펴考정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일찌기 이 點을 慨歎하고 哀惜히 여긴바 위로 直長令同正公以後로 子孫이 점차 繁榮하여 내려 오다가 十餘代에서 各宗派에서 支派로 區分하게 되니 이를 記錄 保存하게 함에 壬午譜에 힘을 다하였다。
그 뒤로 數百年이 經過하는 동안에 글자가 바래고 희미해져 記錄된 實蹟및 行實의 자취가 없어져감에 뜻있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感歎한 나머지 이를 깊이 걱정하되 서로 한가지로 相議하여 譜諜出刊에 對한 資金을 모으기로 合力그 빠진 곳을 이루게 하다. 이로 말미암아 옛 上系에 따라 아래로 後孫까지 상세하게 기록하며 刊行年代의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고 그 先後代를 이어서 차례로 적은 것을 補完하여記錄하였을 뿐이다。이런 까닭으로 밀미암아 己巳譜의 序文에 가름한다。
檀紀四二六二年(西紀一九二九年)己巳 十月 上旬
後孫 三夏 삼가씀
丙辰譜(一九七六)序文
國有史하고 族有譜하니 史也者는 述其朝堂一日二日之史要하고 譜也者는 乘其先祖하며 而序昭穆하며辨其宗支하며 以啓後裔者也니 義則在乎合焉이니라 故로 國而無史則不可以知歷朝之興亡盛衰風習教化典章文物이요 族而無譜則何據而知祖宗之所係與世德而雲仍之分布狀况耶아 睦宗之道는 莫知譜也니라 李吾宗之先系七世之登仕年月官啣配位與墓所之失傳은 曾無修譜而不傳之所致歟인저 中世에忠憲公以先事之意로欲其修譜而廣蒐草稿라가 赴於國憂하사 未遑成譜而終하시니 嗚呼惜哉로다 藥峰沈判書는 乃忠憲公之外孫也라 遺來海南하야 惜外門之無譜하고 因草稿而成書할새 時在肅廟壬午年하니 此吾譜之嚆矢也라 純廟時에 海差公又欲繼修而未果하고 年過二百有二十八年하야 去在己巳年에 始成大同譜하니 是亦未必全族之合하고 又有漏修之憾矣라厥後年僅二十一年하야 庚寅動亂이 勃撥하니 世稱六二五動亂이라 同族이 相殘하고 地分南北에 人離四方하니 雖曰宗族이나 路過反目하며 視若途人然하야 幾至乎蔑倫之嫌矣라 余嘗修譜之事로 爲先務하고 發於宗議라가 未果하고 終至於派別的修譜而己矣라挽近社會的風紀紊亂이 不無하며 倫理가 解弛하고 道德이 塗地라 莫知其先者不無요 不顧其族者亦有라 不啻라 核家族云云하며 甚至於同族間婚姻論이 檯頭하니 雖曰西歐之趨勢라 하나 是는 忘本悖倫之行이요 不免夷狄之道이니 聞不勝慨嘆之至라 何幸昨冬廣厚契席上에서 門議가 齊發하니 咸曰勝事라하고 無一異論하야 今春之初에 俓始而未過幾月하야付諸 剞劂而克竣其功하니 自己巳譜后로 年計則己過四十七年이라 三十年을 爲一世로 修譜之期云則尚有晩時之嘆이나 然이나 豈非吾門之幸事而盛且美事耶아 合則分하고 而合者는 理所固然也니라 窃惟吾宗之麗가 不數萬千이라 倘有漏一者否아 念茲在茲라 令同正公으로 爲首而一本億麗가 昭昭載於此譜則以吾譜之人으로 常目在之하야 不忘其本則孝悌睦宗之心이 油然而生矣이 使來裔之覽者로 因時考究則其於溯源垂後之道에 庶幾乎裨補之萬一云이리라 因書而爲序하노라
西紀一九七六年 丙辰臘月下澣 後孫 泳善 謹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