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당유고(杏堂遺稿)
행당杏堂윤복(尹復, 1512-1577)은 윤효정의 넷째 아들이다. 십대 초반에 큰 형인 귤정橘亭을 좇아서 학문을 하여 문리가 크게 통하였다고 한다. 23세에는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27세 때인 1538년에는 문과 별시에 급제하였다. 나중에 부안현감에 제수되었는데, 흉년을 만나 백성이 굶주리고 있어서 구휼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였다고 전해진다.
1562년에는 광주 목사에 임명되었는데, 몇 달 안 되어 병으로 사임하고 돌아갔다. 그 다음 해에 안동대도호부사가 되었는데, 이때 퇴계선생이 도산에서 강학한다는 말을 듣고 공직의 여가에 가서 인사하고 때로 경전의 뜻이나 시사의 변석에 대해서 논하기도 하였다. 훗날 퇴계 선생은 서울에서 유희춘柳希春을 만나 “윤복은 진유眞儒이며 아인雅人이다"라고 칭찬하였다고 한다
이후 신병으로 여러 번의 관직을 모두 사양하고 백련서사白蓮書舍에 거처하며 호를 행당杏堂이라고 하고, 형제들과 함께 돈독한 우애를 쌓아갔다. 1577년에 운명하였으니 향년 66세였고, 강진군 서쪽에 장사지냈다
(행당유고는 1930년 강진의 귤림정사橘林精舍에서 윤정하尹定夏가 (행당선생유고)라는 이름으로 발행하였다
모두 5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활자본이다. 권1에는 시 4수와 부賦5수, 의疑1편, 기·묘지명 계문 등 6편이 실려 있다. 권2에는 부賦15수가 실려 있는데, 이곳에는 윤복의 형제들 중 누군가가 쓴 것으로, 작자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은 것이 실려 있다. 권3에는 전라도도사를 지낼 때 쓴 뗄록과 승정원의 일기인 은대일록이 실려 있다. 권4는 부록으로 윤복과 관련된 시와 문장을 뽑은 것이 실려 있다. 권5에는 연보나
신도비명, 행장 등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