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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 시조를 가르치며

조회 수 4 추천 수 0 2024.02.06 17:33:49

명절이면 어른들은 조상 이야기를 했다. 그때 고산 윤선도 할아버지가 자주 나왔다. 왕의 스승까지 했지만, 정치적 한계에 막혀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다행히 자연에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런 가운데 문학 창작에 몰두해 조선 최고의 시인으로 역사에 남았다고 마음을 달랬다.

이런 영향을 받았는지 고등학교 때 국어 시간이 즐거웠다. 특히 윤선도 시가를 배울 때는 은근히 뿌듯했다. 원용문 선생님(나중에 한국교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감)은 고산의 시조를 가르치며 엄청난 수사를 쏟아냈다. 자연 친화와 물아일체의 경지를 노래했다.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노래했다.

그런데 그런 것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학습 내용보다 선생님이 들려주는 윤선도 이야기가 마음속에 번졌다. 당시 집권 세력의 비리를 지적하다가 유배를 당하였다는 이야기였다. 아버지까지 관직을 빼앗겨 집안은 무너질 위기였다. 그 후에도 윤선도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집권 세력 앞에서도 옳은 말이면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럴 때마다 벼슬도 잃고 벽지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다고 했다.

윤선도가 지조 있는 선비처럼 느껴졌다. 불의에 저항하고,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지사 이미지로 다가왔다. 차가운 세상에서도 글쓰기 집념으로 마음을 다독인 모습이 떠올랐다. 왕자를 가르치던 스승의 모습도 좋았다.

할아버지 윤선도가 자랑스러웠다. 문학에 대한 열정이 감동이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려 썼다는 평가도 왕의 스승이었다는 이력도 흥미로웠다. 윤선도처럼 글을 쓰고 누군가의 스승이 되는 길을 꿈꿨다. 자연스럽게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갔다. 그리고 평생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쳤다. 글 쓰는 일도 즐겼다.

좋아서 시작했던 것처럼 교직 생활은 행복했다. 수업 시간에 자신감이 넘쳤다. 개념을 정확히 제시하고 쉬운 예를 들어 설명했다. 풍요로운 감성으로 문학도 가르쳤다. 유배지에서도 문학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윤선도 정신을 아이들 마음속에 꿈과 희망으로 길러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목소리에 힘이 없어지고, 아이들은 눈빛이 흐려졌다. 수업 시간에 나만 말하고, 아이들은 지루하게 듣기만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업에 변화가 필요했다.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들이 배우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말을 많이 하도록 노력했다. 그런데 고전문학을 가르칠 때는 잘 안 됐다. 아무리 정교하게 수업 계획을 세워도 아이들은 고전을 만나면 움직이지 않았다. 언어 표현도 배경도 다르다 보니 선뜻 마음도 열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윤선도 오우가를 만났다. 자연을 친구로 삼는 시적 표현에 아이들은 쉽게 다가섰다. 아이들은 이미 자연을 친구처럼 가까이하는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자연과 하나가 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 경험을 나눴다. 다소 소란스럽기도 했지만, 수업 시간에 아이들은 무엇엔가 연결되는 친밀감을 느꼈다. 수업 시간에 소외당하고 있던 아이들이 차츰 주인공이 됐다. 아이들은 저마다 내면으로부터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어부사시사를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작품 속 풍경에 마음의 문을 열고,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입시 준비에 짓눌렸던 교실은 푸른 산바람이 불어오고, 맑은 강물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자신이 만났던 풍경을 나누면서 교실은 한순간에 사계절 아름다운 산천이 열렸다.

고등학생들은 대학 진학을 코앞에 두고 있어 부담이 많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성과는 늘 제자리에 맴도는 기분이다. 평상시에 친구 관계는 좋지만, 어쩌다 한번 어긋나면 마음을 다친다. 다시 예전처럼 지내고 싶지만 회복하는데 더디기만 하다. 화려하고 편리한 도시에 살지만 답답한 구석도 많다. 아파트에서 이웃과 인사도 없이 산다. 이래저래 유한한 시간과 제한된 공간 속에서 지쳐만 간다.

홍수처럼 쏟아내는 학습 정보보다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평온을 얻고 품성을 키울 수 있다. 교실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아름답게 그려낸 문학 작품을 읽는 것도 방법이 된다. 문학을 통해 자연과 숨 쉬고, 현실에서 자연을 보고 느끼는 심미안을 갖게 하자. 교실에서 배운 경험으로 현실 생활에서 자연의 넉넉한 풍경을 즐기며 여유와 안정감을 찾는 습관을 키울 수 있다.

아이들은 나무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새싹을 틔운 현상을 나눈다. 돌 틈에서도 풀 한 포기가 끝까지 살아낸 것을 안다. 척박한 땅에서 적응하고 생명을 키운 것에 외경감을 느낀다. 늘 옆에 있었는데 지나치고 이름 한 번 불러주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자연은 세상을 이해하고 예술적인 영감을 얻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너도 한 생명이었는데, 너의 땀과 끈기를 그 열정을 알아주지 않았구나. 미안하다.’처럼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난다. 자연을 사랑하면서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싹 트는 경험도 한다. 내면에 차오른 통찰력은 삶에 깊은 의미를 발견하고 인생에 새로운 여정으로 인도한다.

수업 시간에 설명을 줄이고 아이들에게 말을 많이 하게 하면서 걱정했는데, 아이들이 오히려 만족한다. 개념적 설명이 부족한데 괜찮을까 고민했는데, 아이들은 서로 대화하면서 앎의 영역을 스스로 넓혀갔다. 일방적으로 가르쳐주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수업 시간은 활발해지고, 시험 점수도 잘 나온다.

아이들 마음이 보인다. 수업 내내 마음과 눈빛으로 나눈 결과다. 아이들도 수업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기억한다. 윤선도 작품의 아름다운 문장 표현으로 아이들은 언어 능력이 향상되고 예술적 감수성도 키웠다.

문명의 발달로 반자연적인 사고와 문화가 팽배한다. 여기저기서 위기를 말하지만, 해결책은 요원하다. 윤선도 시가는 자연을 대하는 본질적인 태도를 의미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오래전 작품이지만, 여전히 오늘날 우리에게도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자연에 말을 걸고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경험은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 수 있다. 예술성 감수성도 키워주고 삶을 평안하게 보듬어 준다.

자연은 우리에게 살아가는 힘을 준다. 늘 눈앞에 자연을 보면서 산다는 것은 행운이다. 윤선도의 시도 마찬가지다. 자연과 함께 한 시인의 태도에서 삶에 관한 질문과 답을 얻는다. 읽으면 읽을수록 미적인 즐거움과 심오한 영감이 쌓인다. 오래전 시인의 삶이 고리타분한 처세가 아닌 가장 현대적인 삶의 태도로 다가온다. 그래서 세대를 초월해서 시를 읊조리고 있다. 아버지 세대가 읽은 고전을 우리가 다시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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