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5
| 왕조 : | 선조조 |
|---|---|
| 관직 : | 木浦水軍萬戶, 興陽縣監, 宣武原從勳 |
字 而素
萬户軍器寺奉龍蛇之燮與仲兄判官公擊敵達摩山斬獲甚多戦至兵峙敵圍甚急路左忽有二蛇兄弟各持擊斬數百級更視乃古釼也
錄 宣武原從勳
光海癸丑 陞行臨淄島鎭管 木浦水軍萬戶 通訓大夫 興陽縣監
墓 三山面上駕里内洞乾坐
미상∼1629년(인조 7). 조선 중기 의병. 본관은 해남(海南)이다.
조부는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삭직된 기묘명현(己卯名賢) 윤구(尹衢)이고, 형은 판관 윤현(尹俔)이다.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윤검은 형 윤현과 함께 해남 달마산 싸움에서 일본군과 싸워 승리하였다. 그 여세를 몰아 윤검은 의병과 함께 강진 병치(兵峙)에 이르렀으나 일본군에게 포위를 당해 오히려 위급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급한 순간에 돌 틈에서 구렁이 두 마리가 나오는 것을 보고 양 손에 잡고 일본군을 향해 휘두르자 일본군이 모두 쓰러졌다. 이에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고 양 손에 든 구렁이를 확인하니 그것은 구렁이가 아니라 녹이 쓴 큰 검이었다. 그렇게 고비를 넘기고, 다시 장흥 석대 아래에 다다랐지만, 다시 일본군에 포위되어 위급한 상황에 빠졌다. 그럼에도 윤검은 오히려 일본군의 말을 빼앗아 타고 달아났으나, 탈출하는 도중에 형이 일본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이에 그는 형의 시체를 수습하여 돌아와 초상을 치렀다.
관직은 흥양현감(興陽縣監)을 지내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으며, 이후 선무원종공신(宣撫願從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