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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 한글 시조에 담긴 정신

조회 수 7 추천 수 0 2024.02.08 16:21:09

우리 국민은 고산 윤선도를 어떤 인물로 기억할까? 간혹 명문가 집안 출신의 조선 문신이다. 왕의 스승이었다. 풍수에도 능했고, 의학서 등도 남겼다. 남인으로 집권 세력인 서인에 맞서다가 여러 차례 유배하러 가곤 했다.’ 등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누구나 아는 것은 시인 윤선도다. 정철, 박인로와 함께 조선 시대 3대 가인이라고 기억한다. 누구나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윤선도 시조를 배운다. 대입 수학능력시험 등 국가 고사에서도 윤선도 시조를 자주 본다.

 

내 벗이 몇인가 하니, 물과 돌과 소나무와 대나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것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 하리?

 

윤선도가 56세 때 유배지인 영덕에서 돌아와 쓴 오우가(五友歌). 해남 금쇄동에서 은거할 무렵에 지은 산중신곡에 들어 있는 시조로 총 6수 중 첫 수다. , , 소나무, 대나무, 달을 진정한 벗이라고 말하면서, 예찬하고 있다.

자연과 친구가 되는 발상은 상상만 해도 따뜻하다. 현대인도 자연을 찾아 즐기고, 위안을 얻는다. 명상에 잠겨 있는 나무와 그 아래로 굽어 흐르는 물줄기는 들끓게 하는 감정을 잠재워 편안하게 한다. 자연은 화려하지도 번잡하지 않으면서 마음으로 다가온다.

윤선도 시조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다. 국문학사에서도 충분히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다시 새기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말을 잘 살려 쓴 정신이다. 당시는 한문으로 생활하던 시기다. 어릴 때부터 한문을 익히고 그것으로 벼슬길에 나갔다. 사대부들은 사적인 문서도 한문으로 남겼다. 한글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고산도 한문으로 벼슬길에 나갔다. 글을 쓸 때도 한문이 편했다. 하지만 마음의 표현은 달랐다. 생각과 말을 우리말로 하듯, 정서를 우리글로 노래했다.

우리글로 시를 쓴 이유는 시조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시조는 시절가조(時節歌調)에서 온 명칭이다. 즉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라는 뜻이다. 훈민정음 정인지 서문에 천지자연이 소리가 있으면 곧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자가 있는 법이라고 했다. 소리가 먼저 있고, 글이 생겼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한글은 소리 중심의 음소 글자다. 음악 곡조 격인 시조는 우리말로 부를 때 어울리는 것이다.

고산이 한글 시를 최초로 쓴 것은 32(1618) 때다.

 

슬프나 즐거우나 옳다 하나 그르다 하나

내 몸의 할 일만 닦고 닦을 뿐이로다

그 밖의 다른 일이야 생각하거나 근심할 필요가 있겠는가?

 

견회요첫 수다. ‘견회(遣懷)’시름을 쫓다또는 회포를 품다라는 의미로 견회요마음을 달래는 노래라는 뜻이다. 성균관 유생 신분으로 당시 예조 판서 이이첨의 횡포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권신에 대항했으니 돌아오는 일은 불을 보듯 뻔하다. 모함을 받고 함경도 경원으로 쫓겨 갔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가득했다. 이 마음을 달래려고 쓴 시다.

이 시는 고산의 가치관과 삶의 자세를 그대로 보여 준다. 남이야 뭐라고 말하든 내가 할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이첨의 탄핵을 전혀 후회하지 않고, 그로 인해 받은 핍박도 이겨내겠다는 의지다. 신념대로 행동하는 강직한 태도,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정의감이 느껴진다.

윤선도 문학의 절정은 65(1651)에 보길도를 배경으로 지은 시에 있다.

 

우는 것이 뻐꾸기인가 푸른 것이 버들 숲인가

이어라 이어라

漁村(어촌) 두어 집이 냇 속의 나락들락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말가한 깊은 소에 온갖 고기 뛰노다.(춘사 4)

 

연잎에 밥 싸두고 반찬으란 장만마라

닷 드러라 닷 드러라

청약립(靑篛笠)은 써잇노라 녹사의(綠蓑依) 가져오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무심(無心)한 백구(白鷗)는 내가 좇는 것인가 제 좇는 것인가.(하사 2)

 

어부사시사는 춘하추동 각 10수씩 40수다. 국문학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작품으로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국가 유산이다. 이 작품에는 배를 띄우고, 돌아오는 과정을 나타내는 여음이 삽입되어 있다. 노 젓는 소리와 어부가 외치는 소리까지 실었다. 누구도 하지 못했던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표현이다.

어부는 자연을 즐기는 사람이다. 혼잡한 속세를 등지고 자연에서 유유자적하는 선비다. 그는 윤선도 자신일 수도 있다. 사실 윤선도는 오랜 유배 생활에 지쳤다. 산간벽지에서 겨울밤 추위는 고통스러웠다. 먹을 것도 없어 풀뿌리로 연명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죽을 고비를 넘길 정도로 고생한 유배지였다. 이제 자유로운 몸으로 돌아와 노년에 몸과 마음을 쉬는 중이다.

흔히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시대 강호시가는 정치적 투쟁을 혐오하는 사대부들에 의해 주로 창작되었다고 평가한다. 이런 관점으로 자연은 현실 도피처고 은일의 공간이라고 한다.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 내면에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중에 자연에 기대는 방법이 좋다.

고산의 시가도 그런 범주에 있다고 바라보기도 한다. 윤선도의 자연은 잠시 머물고 떠난 곳이 아니었다. 20년을 유배지에서 보내고, 19년 동안 세상을 떠나 자연 속에서 살았다. 그냥 삶의 공간이었다. 자연에서 본연의 삶을 누리면서 그 삶이 시가로 나왔다.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잘 견디고 삭혀서 평온을 얻는 법을 익혀온 자기만의 자연관이 작품 속에 있다. 자연이 마음에 머물러 노래가 된 것이다.

윤선도의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름다운 우리말 표현이다. 한문은 관념적인 세계다. 실제로 조선 시대 자연을 노래한 시가 중에는 안빈낙도 등 관념적인 경향이 많다. 윤선도 시는 자연의 현장성으로 탄생했다. 산천과 강물의 평화로움은 심미가 충분하고 여유를 느낄만하다. 여기에서 솟는 서정은 아름다운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묘사된다.

17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개혁을 부르짖은 실학파는 근대사회 성립의 전초라고 할 수 있다. 양반의 특권 폐지와 상업 활동 중시는 실로 개혁적인 학풍이었다. 그러나 유형원, 박지원, 정약용 등 실학파들의 주장은 한문이었다. 백성의 현실과 괴리된 한문은 역사적으로 안타까운 면이 있다. 그들이 한글에 주목했다면 우리 사회에 새로운 개혁의 바람이 불지 않았을까.

윤선도는 백성을 아끼는 따뜻한 인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가난 구호에도 직접 실천하기도 했다. 살아가면서 현실을 깊고 넓게 들여다본다는 현장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이와 연관해 생각해 보면 윤선도의 한글 사용은 우연이 아니다. 한문에서 권력이 나오고 한문으로 의사소통하는 시대에 백성의 편에 마음을 두고 있었던 가치와 연결된다. 결국 윤선도는 탁월한 예술적 소질과 감성의 소유자이면서 백성에 가깝게 다가서려던 실천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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