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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윤씨귤정공파종친회

기타고문서

<康津鄕儒가 御史에게 올리는 글>

 

이 글은 道光二年壬午(西紀一八二一年) 二月 日에 康津儒林 吳章海 外三十五人이 마침 本道를 巡察한 街史 老峰 閔公 昇重에게 海南尹氏家의 忠臣六人의 偉蹟을 聖上에게 啓奏하여 褒旌의 恩典을 베푸시도록 周旋해 주심을 바라는 글월이다.

 

옆드려 생각함에 生等은 이 고을에 代代로 살아오면서 古人의 말씀을 이어받아 海南尹氏家門에서 忠節을 꽉잡고 나라 위하여 순절한 義理를 익히 일기 때문에 이를 官付에 보고하고 營門에 호소한지 아지못케라 몇번이었을까. 그러나 아직까지 거룩한 行蹟이 없어져가도록 나라에서 표창하는 恩典을 무릅쓰지 못하니 초가집 꺼져가는 등불밑에 외롭게 앉아 무릎치면서 통탄하였더니 어찌 다행하리요 하늘이 그 씩씩한 충정을 千萭年토록 없어져버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마침 聖君의 세상을 만나 특별히 閤下를 파견하시어 南方의 幽光이 드러나도록함이니 生等은 請컨대 여기에 한 말씀하려 하옵니다.

 

靈岩, 庚津, 海南 三郡이 交叉된 곳에 城山과 兵峙가 있으니 여기는 곧 故軍資監主簿 尹紳 三父子가 戰死했던 땅이다. 옛적壬辰年( 一五九二年宣廟二十年)에 倭賊이 침입함에 海岸邊에 있는 여러 고을이 가장 먼저 혹독한 피해를 받아 자리를 마는듯 흙덩이가 무너지는 듯 境内가 모조리 賊의 橫暴속에 덜고 있었으나 눈을 부릅뜨고 가슴을 활짝 펴고 목숨을 鴻毛처럼 가볍게 여기며 살기를 버리고 죽기를 맹세한 忠義之士가 한 살마도 없으나 유독 尹氏집에서 忠義를 부르짖고 일어나 國恩과 報答하고 백성을 위하여 죽음 보기를 돌아간 것 갈이 하니

 

아! 씩씩 하도다. 尹氏는 講亭先生 諱 循의 孫으로서 橘亭先生의 再從孫이 된다. 그 忠節은 이미 湖南節義錄에 나타나 있으며 또 더구나 조정 大臣들의 傳記와 序文과 跋文에 나타난다. 따라서 城山은 저기에 그 모양 그대로 있으며 兵峙의 싸움은 어제 있는 것 같으니 어찌 한갓 生等이 이땅에 살면서 계계승승 익숙하게 틀었을 뿐이라 할 것인가. 대저 主薄公이 官職을 버리고 鄕里에 돌아온後 갑자기 시끄러운 亂離들 만나 嶺湖南兩道가 적군의 소굴이 됨에 君王을 알련할 길이 없음으로써 하나의 길이라도 保全하여 王恩을 보답하는 責任을 다하리라 하고 長姪 奉事公 致慶과 長子 東喆과 謀議 끝에 義兵을 일으키기로 하고 집에서 부리는 종 數十八과 모집한 義兵數百名을 거느리고 兵器를 만들고 軍糧을갖추고는 康津邑 南쪽 城山에 陣을 치니 대개 그 山은 康津과 海南의 목구멍같은 要害處다,

 

여기에 작은 城을 쌓고 伏兵할 곳을 마련하여 甚히 많은 賊을 사로잡으니 海邊에 있는 고을이 여기에 힘입어 편안하게 되었다. 丁酉年( 一五九七年)에 이르름에 賊의 세력이 다시 더욱 치열해져서 城을 무찌르고 사람 죽이기를 풀잎 베듯하였다. 옛적 管公의 심중에는 國家 있음은 알고 내몸 있음은 모르며 무릎 꿇어 항복함은 알지 못하고 斬首되어 죽음 당함은 잊어버렸으니 公도 나라 사랑하는 一片의 丹心 더욱 독실하여 다시 아들 및 조카들과 더불어 남은 군사들을 주어모아 빈손을 활짝 펴고 칼없는 빈 몸뚱이를 휘두르며 義理로써 게유하고 忠誠으로서 격려하며 烏合之卒을 규합하여 一旅軍도 못되는 兵士로써 볼래 나와 奇襲과 正面공격으로 贼의 先鋒으로 하여금 銳氣를 믿고 방자하게 날뛰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는 公이 그 賊勢를 꺾어 그 衝動을 멈추게 함이었다. 아! 슬프도다. 睢陽城을 기리는張巡의 援軍은 끊어졌도다. 縣竹에서 抗拒한 諸葛公의 兵勢는 곤궁해졌도다. 마침내 賊의 大陣이 계속하여 이르름을 當하여서는 大橋의 들판에서 大會戰을 전개하다가 가볍게 활과 총을 맞음에 상처를 싸매고는 다시 앞으로 진격하여 몸을 솟구쳐 한번 충돌하여 많은 賊을 죽였으나 중과부적이라. 장차 어찌될 것인가. 兵卒들은 먼저 이미 比面을 발라썼다.

 

드디어 적삼 한 폭을 찢어 피로서 글을 쓰니 r空委身命無报聖朝」라는 八字를 쓰고는 아버지, 아들, 조카와 함께 賊에게 잡혀서 다리 기둥에 묶이어 살을 깎아 絶命에 이르렀으나 賊을 꾸짖은 소리 입에 끊어지지 아니하니 어리석은 저 오랑캐들도 모두 경탄하였었다. 이때에 公의 종 남편 雲仙이란 者가 다리 밑 숲 사이에서 몰래 이를 보았다가 贼이 물러난 뒤에, 그 피 뭍은 적심을 가지고 달려가 子婦魏氏夫人에게 告하니 魏氏는 슬퍼서 가슴치고 뛰다가 싸우던 곳에 달려가 치마폭에다 세 분의 머리를 싸 가지고 들아와서 모시니 함께 순절한 날은 十月上旬이었다.

 

오늘까지 그 山에는 傳해오는 작은 城터와 將壇과 賢旗堆가 남아있어 하늘이 隱濕한 밤이면 원통하여 울부짖는 소리와 군사들의 싸우는 소리가 아득하게 길손들에게 들리니 後人들은 그 山을 城山이라고 그 山 고개를 兵峙라 한다. 다리의 곁 싸움터에는 커다란 흙더미가 있으니 이것은 곧 그때의 景觀이다.

 

슬프도다. 한 사람 몸으로 萬民의 목숨과 바꾸어 功은 비록 알려지지 못했으나 그 유적은 거룩하도다. 또 더욱 유복지진에 당시 楊根君守인 諱 履慶은 職을 끌까지 지켜 職을 베개 삼아 순절하였으며 그 아우 判官公 諱 益慶은 義理를 부르짖고 군사를 모와 西쪽으로 임금계신 義州로 向하다가 中途에서 賊을 만나 이와 더블어 치고 싸와 그 사로잡고 베어죽인 바가 紅衣將軍 郭再佑와 더불어 서로 비슷하였었다

아! 슬프도다. 小數의 我軍으로 多數의 贼을 치니 일을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流彈에 마져 운명하기에 이르렀다.

 

그 아드님 諱 東老는 丙子年 北胡의 亂에 벼슬없이 白衣입고 義兵을 거느리고 임금님 모실 마음으로 西쪽으로 行在所에 달려가다가 아직 公山에 이르지 못했을 때 江都의 消息을 듣고 통곡하면서 돌아와서는 棠林北山밑에 움막을 짓고 매양 漢丞相諸葛亮의 出師表를 읽으며 마음에는 항상 陸放翁의 窮山의 恨을 품고 있었으며 r滅倭斥和 四字를 座右銘으로 삼으면서 終身토록 나라의 원수를 잊지 아니 하였다.

 

어찌 이렇게 一門之中에 빚나는 忠義之士가 모였을까. 옛적 唐나라에 常山太守 顧杲卿과 原太守 颜眞卿은 同族으로서 叛將 安祿山과 싸워 各各忠節을 다하였으니 그를 또한 여기에 可히 보겠도다. 저 壬辰倭亂、丙子胡亂이 지난 後부터 표창하는 恩典에서 유독 尹氏에게 못한 것은 아니 훌륭한게 된 子孫이 없어 그러는가. 당국에서 들추어 내지 않기 때문인가 象魏가 멀고 멀어 취隅는 아득함에 千秋에 그 이름 泯沒될 것이니 어찌 슬프고 아쉬웁지 아니하리요. 공순히 생각함에 벼슬한 大夫들이 이분 위하여 傳記를 쓰고 行蹟을 기술하였고 道内의 선비들이 營門에 呼訴하고 官府에 呈書참으로 이는 하늘이 善者에게 보답하는 길이로 다. 엎드려 생각함에 閤下께서는 風敎를 독실히 하시고 五倫三綱을 바르게 하시여 아름다운 行義를 표장하심을 御史府의 弟一義로 삼으시니 生等은 서로 이끌고 와서 按廉史밑에서 仰訴하오니 특히 忠烈의 담당함을 천거하여 위로 총명하신 聖上에게 주달케 하시어 포상의 恩典을 무릅쓰게 하도록 하며 주시면 千萬다행이겠습니다.

 

题音 해가 오래된 일이건만 아직 褒賞의 恩典을 무릅쓰지 못했으니 참으로 잘못된 法이로다. 마땅히 잘 헤아려 임금님께 啓奏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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