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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고문서

성호전집 제68권 / 소전(小傳)


풍암 문 선생 소전〔楓巖文先生小傳〕

 

풍암(楓巖) 문 선생(文先生)의 이름은 위세(緯世), 자는 숙장(叔章)으로, 장흥(長興)에 살았다. 선조는 남평(南平) 사람이다. 고려조 때 집현전 태학사(集賢殿太學士) 공유(公裕), 평장사(平章事) 극겸(克謙)이 원조(遠祖)이다.

 

공은 젊어서 귤정(橘亭) 윤공(尹公)을 찾아가 배우고 또 미암(眉巖) 문하에서 경의(經義)를 강학하였는데 미암이 지극히 칭찬하였다. 이윽고 자형(姊兄) 박광전(朴光前), 외종제 윤흠중(尹欽中)을 따라 도산(陶山)에 가서 퇴계 선생을 뵙고 수학하였다. 선생보다 33세 아래였다.

모친이 연로하기 때문에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돌아왔다. 얼마 있다가 진사시에 응시하였으나 입격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벼슬길에 나갈 뜻을 끊고 가지산(加智山)에 집을 짓고 평생을 보낼 것처럼 하였다.

 

임진년(1592, 선조25)에 왜구가 대거 침입하여 상께서 서쪽으로 파천하자 공이 박광전을 찾아가 말하기를, “지금 조헌(趙憲), 고경명(高敬命)이 패전하여 죽었고 적의 형세가 날로 치열해지고 있으니, 만약 일찍 계책을 세우지 않으면 때가 늦어 미칠 수 없을 것입니다. 숨어 엎드려서 살아남는 것보다는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하니, 박광전이 따랐다. 이에 격문(檄文)을 여러 읍에 전하여 용사(勇士) 수백 인을 얻고 조정 관원인 임계영(任啓英)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가니 군사가 천 명에 이르고 기세가 점점 떨쳐졌다. 임계영이 말하기를, “군대에 남아 있는 양식이 없으니 어찌하는가?” 하였는데, 공이 이웃 고을을 순행하면서 강개하게 효유하니, 듣는 자들이 감읍하여 곡식을 끌어다 계속 대 주었다. 나아가 여러 도의 의병과 합세하여 금산(錦山), 무주(茂朱)에서 승전을 거두었고 개령(開寧)에서 적의 예봉(銳鋒)을 막았으며 성산(星山)에서 적의 기세를 빼앗아 우뚝이 보장(保障)을 만들었다. 임계영이 그 일을 상주하였고 도원수 권율(權慄) 또한 공을 추천하여 수공(首功)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해에 적이 물러나 울산(蔚山)에 주둔하니 상이 환도(還都)하고 여러 도의 의병을 파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공은 고향에 돌아와 한가하게 지냈다. 얼마 있다가 관원들이 또 번갈아 가며 재주와 학식으로 공을 천거하였다. 이에 용담 현령(龍潭縣令)에 특별히 제수되었는데, 공은 연로하여 벼슬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라에 아직 근심이 많아 의리상 감히 사양할 수 없어서 억지로 부임하였다. 용담 또한 적이 지나는 길의 요충지였는데, 적이 난입하자 공은 흩어진 백성들을 불러 모아 요해지를 점거하여 적을 많이 참획(斬獲)하였으니, 고을이 덕분에 온전하게 되었다.

 

4년 뒤 무술년(1598, 선조31)에 적이 철수하고 돌아가자 공이 마침내 관직을 내놓고 돌아왔다. 고을 백성들이 울면서 머물러 주기를 청했으나 공이 듣지 않자 이에 비석을 세워 그 은혜를 칭송하였다.

 

2년 뒤 경자년(1600)에 상이 공의 노고와 공적을 생각하여 자급을 건너뛰어 파주 목사(坡州牧使)에 제수하였으나 공은 이미 병들어 있었다. 집에서 졸하였다. 저술은 《풍암기문(楓巖記聞)》이 있다.

 

외종제 윤흠중은 자가 중일(仲一)이고 호는 석문(石門)이다. 해남(海南)에 살았다. 귤정 윤구(尹衢)의 조카로서 퇴계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다. 선생보다 56세 아래이다.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하였으며, 졸한 나이는 51세이다. 그 부친은 감사 윤복(尹復)으로 안동 군수(安東郡守)를 지낸 적이 있어서 선생과 왕복한 편지가 있다고 한다.

 

박광전은 자가 현재(顯哉)이며 보성(寶城)에 살았고 호는 죽천(竹川)이다. 역시 퇴계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다.

 

[주-D001] 문 선생(文先生) : 문위세(文緯世, 1534~1600)로, 호는 풍암(楓巖)이다. 《葛庵集 別集 卷5 通政大夫坡州牧使文公墓碣銘》

[주-D002] 윤공(尹公) : 윤구(尹衢, 1495~?)로, 호는 귤정(橘亭)이다.[주-D003] 미암(眉巖) :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의 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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