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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윤씨귤정공파종친회

소개/연혁

귤정공파 종친회 창립 동기


1988년(음) 10월 1일 락천공 선조 시제일 음복자리에서 광주(廣州)윤영택 종친으로부터 송정2리 산 40-1번지 외 3필지 토지를 김한조 일당의 사기단으로부터 사취당한 소식을 접함.


※시제 참석 종원 윤주연, 윤영석, 윤영표, 윤재완, 윤윤옥, 윤석순, 윤봉현, 윤덕현,    윤영현, 윤영완, 윤재락, 윤동현, 윤재근, 윤재운 씨등 14인과 광주 종친 윤재기씨 외 8인 총 23명 참석


※1989. 01월 28일 종친회  대책회의에서
  1)조속한 시일 내에 원인 무효 소송 제기키로 합의
   ➀광주종친은 타성 변호사 선임주장
   ②서울 종친들은 윤일영변호사 선임주장
  2)광주 토지 환수가 목적이므로 광주 종친들의 의사 수용키로 하고 산회함


※1989년 02월 10일 윤형식, 윤준식 종친으로 부터 광주(廣州)종친들이 비용문제 로 곤란하니 서울종친들이 추진해 달라는 보고가 있음으로 이로 인해 윤봉현, 윤재완, 윤영완, 윤록현, 윤형식, 윤준식, 윤재춘, 윤호현 등이 합동하여 이를 서울 종친들이 추진키로 하고 윤일영 변호사를 선임키로함 그래서 소송비용은 윤형식 종친으로 하여금 윤태현 종친과 상의하여 차용토록 함


※1989년 02.12일 소송인 선임문제를 협의키 위하여 윤영완, 윤재완, 윤재락 등  3인이 윤일영 변호사와 협의
  ➀ 소송인 선임은 종토를 영구 보전키 위하여 토지 및 임야대장에 연명으로 등제  된 윤관하 외 5인 (연명인 전원 사망 그 중 주철 재완 양인은 절손되었음)  장손 윤영선, 윤영덕, 윤재기, 윤재춘 등 4인 명의로 소송하는 방법
  ② 해남윤씨 귤정공 종중으로 하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함으로 일을 조속히 추진키 위하여 4인 명의로 하라는 자문을 받음


※1989년 02월 12일 윤형식 종친으로 하여금 4인의 소송동의를 얻도록 위임함
  소송 선임동의 내용은 확정 판결 후 해남윤씨 귤정공파 종친회로 이전등기 한다.는 동의각서임


※소송의 조기진행을 위하여 새로 보강한 추진위원회(윤록현, 윤 황, 윤 철, 윤영석, 윤풍현)으로 구성 위임함.


※1989년 02월 25일 윤형식 종친보고 내용은 두 차례나 부산에 내려가 윤영덕  종친의 동의 날인을 요청 하였으나 거부하였다는 보고를 받음


※소송비용을 윤태현 종친으로부터 차용키로 했다는 윤형식 종손의 보고가 있음


※1989년 03월 03일 추진위원들은 합동하여 4인의 공동 소송이 실패함을 인식하고 부득이 종중명의로 소송키로 함


※1989년 05월 14일을 기하여 종친회를 소집키로 합의함

 

※1989년 03월 15일 윤재완, 윤영완 종친이 윤일영 변호사와 협의한바 윤영선, 윤재춘 양인으로 소송인 선임도 가하다는 언질을 들음


※1989년 04월 03일 윤봉현, 윤재완, 윤영완, 윤형식, 윤준식 등이 합동하여 2인명으로 선임 계출키로 합의함


※1989년 04월 12일 태현 종친으로부터 반재각서를 하고 소송비용 ₩2,000만원과 제반잡비로 ₩100만원을 재완종친이 인수하고 모든 재판 관계가 원만히 해결  되면 전액 반재 키로 결의하였음


※1989년 04월 28일 윤봉현 종친에게 의뢰 총회회칙 초안 작성함


※1989년 05월 02일 윤일영 변호사와 회칙에 관한 상담을 하였음


※1989년 05월 04일 서대문 윤 철 종친 사무실에서 윤 철, 윤태현, 윤재완, 윤봉현, 윤영완, 윤재락 등이 회동하여 윤봉현, 윤영완 양인이 하광 하여 그간  진행 상황을 윤영선 종손에게 설명하고 소송동의를 구하기로 결정함


※1989년 05월 08일 윤봉현 윤영완 양인이 하광 하여 윤영선 종손을 면담 지금 까지 과정을 설명하니 종손으로 부터 조속히 추진하라는 요지의 격려를 받고 수일 내에 윤형식 종친 편으로 동의각서를 보내겠다는 언질을 받음


※1989년 05월 20일 윤형식 종친이 영선, 재춘 양인명의로 날인된 선임계만 가지고 상경함


※1989년 05월 21일 법원에 소송을 재기 하려 했으나 동의각서가 없는 소송제기는 불가함을 알고 소송제기 보류를 윤일영 변호사에게 통고함


※1989년 05월 22일 윤철 종친의 사무실에서 당해 문제에 대한 대책 회의를 한결과 윤봉현 종친이 다시 한 번 하광하여 동의각서에 날인을 종용키로 하되 여의치 못하면 차선책을 강구키로 하고 산회함.


※1989년 05월 23일 윤봉현 종친이 하광하여 2시간여 종손을 설득하였으나 명확한 답변을 회피 소득 없이 상경함


※1989년 05월 25일 부득이 문중명의로 소송키로 결정함


※1989년 06월 5일 서대문 윤철 종친의 사무실에서 문중회의 소집 절차 날자 장소및 통지문을 결정하고 동일 1989년 06월 25일 11시 한국일보사 13층 홀에서 회의키로 결정하였음


※1989년 06월 07일 소집통지서 및 위임장 등 초안 작성 인쇄의뢰 함


※1989년 06월 16일 전국에서 지금까지 파악된 650명에게 통지서와 불참시 위임장을 윤만호 윤길호 종장 명의로 우송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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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윤씨귤정공파종친회 주요 연혁

  • master
  • 202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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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정공파 종친회 창립 동기

  • master
  • 20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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