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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윤씨귤정공파종친회

기타고문서

귤정공행장(橘亭公行狀)

조회 수 936 추천 수 0 2017.10.12 09:18:32

귤정공 행장

 

공(公)의 휘는 구(衢)요 자(字)는 형중(亨仲)이요 호는 귤정(橘亭)이요 해남 윤씨이다. 고려조(高麗朝) 휘 존부(諱 存富)께서 시조이시다. 7대를 내려와 휘 광전(諱 光琠)께서 사온직장영동정(司醞直長令同正)이요 휘 단학(諱 丹鶴)을 낳으시니 군기소윤(軍器少尹)을 지냈고, 이분이 公의 고조이시다. 증조의 휘는 사보(思甫)이니 행사직(行司直)으로 통례원좌통례(通禮院左通禮)에 증직되었고 조의 휘는 경(耕)이니 사간으로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증직되었고 고(考)의 휘는 효정(孝貞)이요 호는 어초은(漁樵隱)이니 성균생원(成均生員)으로 호학적선(好學積善)하여 후학들을 교도(敎導)하시니 문교(文敎)가 크게 천명되었다.

 

그때에 큰 흉년을 만나 백성들이 먹고 살기가 부모 공양하기도 어려운 실정인데 미곡을 풀어내어 죄수들을 석방하였다.
이와같이 하기를 세번이나 하여 세번 옥문을 열어준 덕으로 세상에서 경앙(景仰)하는 바가 되었다. 호조참판(户曹叅判)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에 증직되었고, 비(妣)는 증정부인(贈貞夫人) 초계정씨(草溪鄭氏) 귀영(貴瑛)의 여(女)이다. 연산(燕山) 을묘년에 공을 탄생하시니 타고난 성품, 재주가 특별히 뛰어났고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히 효성스러워 아침, 저녁으로 곁에서 보살피며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다.


중종 계유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중종 병자년에 문과 을과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에 제수되었으며 기묘년에 홍문관부수찬(弘文舘副修撰) 지제교겸경연검토관(知製敎兼經筵檢討官)에 춘추관기사관(春秋舘記事官)에 임명되었다.

 

이퇴계 (李退溪) 유미암(柳眉岩)과 같이 호당(湖堂)에 피선(被選)되어 조정암(趙靜菴)과 종유 (從遊)하니 경륜지재(經綸之才)와 문장절행(文章節行)을 사림들이 공경하여 표본으로 삼았다 신재(新齋) 최산두(崔山斗)와 나재(懒齋) 유성춘(柳成春)과 이름을 나란히 하니 세상에서 호남삼걸(湖南三傑)이라 칭송하였다.

 

공이 지은 의제발상론(義帝發喪論)은 그 문장이 해박하고 사물을 널리 분별하여 대단히 훌륭하므로 중국에까지 유입되어 일시에 전송(傳誦)하는 자들이 송연(竦然)히 그분을 상상케 되었으며 예조좌랑(禮曹佐郎)으로 재직시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사은사(謝恩使) 김참판 세필(金參判 世弼) 민이백(閔耆伯)과 함께 연경(燕京)에 갔을 때에 중국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와서 보고 기필(期必)하여 말하기를 귤정선생은 사림의 흠앙(欽仰)한 바 됨이 이를 미루어 알 수 있으니 순명독실(純明篤寶)한 군자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공이 일찍이 주서(注書)로 있을때 임금님의 특명을 받들고 새로 정승이 될 사람을 가려 뽑으려 영의정(領議政) 정광필(鄭光弼)과 우의정(右議政) 신용개(申用溉) 상공의 집에 가서 정승될 분을 묻고는 돌아와서 복명(復命)하여 아뢰기를 마음가짐과 일 행하는 것으로 보아 오직 안당(安瑭)이 가장 적임이라고 하였고 우의정 신용재(申用溉)도 의견을 말하기를 그 직위의 차례로 보면 김전(金詮)과 이계맹(李繼孟)이 있사오나 그러나 안당이 마땅하옵니다 하였다 드디어 안당으로 정승에 등용되었다. 대체로 공론(公論)이 안당(安瑭)이 어질다고 하였기에 그렇게 천거한 것인데 기묘사화가 일어난 후에 당시의 재상들이 전일 정승을 뽑을 때에 신공(申公)이 이계맹을 천거했는데 공이 말을 고쳐서 복명을 하였다고 말을 지어내서 죄를 뒤집어 씌우려 했으나 다행히 임금께서 이를 통촉하시어 윤허하지 않으셨다.

 

경진년에 끝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벼슬을 빼앗기고 해남녹산역(海南祿山驛)으로 유배되었다. 중종 무술년에 승정원에 전하기를 직첩(職牒)을 환급토록 하고 이어 전라도도사(全羅道都事)에 배수하였다. 임기만료로 교체하여 신축년에 순창군수로 제수되니 관아의 문에 지체된 송사가 없고 덕정(德政)으로 백성을 다스렸다 중종 계묘년에 부친상을 당하여 슬픔이 절도에 지나쳐 거의 멸성(滅性)의 지경에 이르렀다

 

복을 마치고 명종 을사 십이월에 홍문관부교리(弘文舘副校理)에 배수되었다가 곧이어 교리에 올랐다. 노모가 계시므로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가니 그후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에 여러차례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영진(榮進)에 전혀 뜻을 두지 아니하였다. 날로 최, 유 양공과 임석천(林石川) 신영천(申靈川) 박눌재선생(朴訥齋先生)과 종유하며 경의(經義)를 강론하고 자질(子姪)을 교도하여 집안에 충효(忠孝)를 전하였다. 산수에 노닐며 시를 읊조리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하여 임천(林泉)의 낙으로 삼았다. 명종 기유 정월에 모부인상(母夫人喪)을 만나 슬퍼함이 예에 지나치고 상례(喪禮)를 집행함에 있어 지나치게 엄격히 하시다 심히 수척하여 병이 나서 12월 24일에 졸하니 향년 55세이다.


아드님이 귀하게 됨으로 자헌대부 이조판서겸지경연의금부사(吏曹判書兼知經筵義禁府事)에 홍문관예문관대제학(弘文舘藝文館大提學) 지성균관춘추관사(知成均館春秋舘事)로 증직되었고 묘는 해남군 북일면 갈두리 산갑좌원(山甲坐原)에 모셨다. 배는 증정부인 평택임씨 진사휴(進士畦)의 여(女)이신데, 갑인년에 나서 명종 무오 8월 14일에 졸하니 묘는 합장을 하였다.


2남1녀를 두었는데 남 홍중(男 弘中)은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禮曹正郎)과 영광군수로 증예조판서(贈禮曹判書)요 의중(毅中)은 의정부좌참찬(議政府左參贊)이요 여(女)는 광산 이중호(李仲虎) 감사에게 시집갔다. 후배(後配)는 증정부인 여산송씨(礪山宋氏) 판서 재후(判書 載休)의 여인데 연산 경신년에 나서 명종 기미 10월 16일에 졸하니 묘는 삼산면(三山面) 상가리(上駕里) 백암동지좌원(白岩洞子坐原)이다
1남 공중 (恭中)을 두었는데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증호조참판 (贈户曹參判)이다.

 

장남 홍중은 무육(無育)하여 질유기(姪唯幾)가 사자(嗣子)가 되었고 차남 의중은 3남 3녀를 두니 남유심(男唯深)은 장단부사 (長湍府使)요, 유기는 관찰사(觀察使)인데 백부의 후(後)로 출계(出系)하였고, 유순(唯順)은 봉사(奉事)요, 여는 윤공(尹鞏) 참의(參議)와 신식(申湜)과 최덕명(崔德明) 주부(主簿)에게 각각 시집갔다. 삼남 공중은 6남 5녀를 두었는데, 남 좌(佐)는 수문장(守門將)이요, 척(倜)은 훈도(訓導)요, 현(俔)은 판관으로 증호조참판이요, 검(儉)은 현감으로 증호조참판이요, 건(健)은 훈련원부정이요, 우(佑)는 만호(萬户)요, 여는 이진(李津)과 박안조(朴安祖) 만호와 박부경(朴無競)과 이진(李振)과 박지봉(朴之鳳)에게 각각 시집갔다. 증현 이하는 번거로워 다 기록하지 않는다.

 

아, 훌륭하 도다. 공의 문장행의와 효행탁절(孝行卓節)이여 백세의 사표(師表)가 되시었다. 숙종 경신에 본도사림(本道士林)들의 건의(建議)로 인하여 해촌서원에 매향(配享)하게 되었다. 공의 17 대 주손(冑孫) 형식보 (亨植甫)와 그 족대부 두현아사(族大父 斗鉉雅士)가 그의 선덕(先德)이 더욱 오래되면 민멸(泯滅)할까 우려하여 선생의 유고를 받들고 와서 나에게 장덕지문(狀德之文)을 청하니 잘하지 못한 글이지만 감히 사양치 못하고 삼가 가장(家狀)을 살피어 졸렬함을 잊고 우(右)와 같이 기(記)를 함은 다음 유덕(有德)하신 분의 집필(執筆)에 상고함이 있게 함이다.

 

단기 사심삼일년(서기 1998) 무인 오월 단양절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윤 재 진 근지


橘亭公 行狀
公諱衢字亨仲號橘亭尹氏海南人 高麗朝諱存富爲始祖 七傳至諱光琠司醞直長令同正 是生諱丹鶴軍器少尹是爲公高租也 曾祖諱思甫行司直贈通禮院左通禮 祖韋耕司諫贈兵曹參議考諱孝貞號漁樵隱成均生員好學積善教授後學大闡
文敎時值大歉民困供糶出米穀放囚如是者稱開獄門之德爲世景仰贈户曹參判同知義禁府事妣贈貞夫人草溪鄭氏貴瑛之女以燕山乙卯年生公天姿特達事親至孝晨昏擩染暫不離側中宗癸酉進士試,合格中宗丙子文乙科壯元及第授權知承文院副正字遷爲著作丁丑陞承政院注書戊寅除禮曹佐郎己卯拜弘文舘副修撰知製敎兼經筵檢討官春秋官記事官與李退溪同被選湖堂與趙靜菴從遊經綸之才文章節行士林矜式新齋崔山斗懒齋柳成春齊名世稱湖南三傑公所製爲義帝發喪論其文博辨奇偉流入於中國一時傳誦者竦然
想其人及至禮曹佐郎以書狀官與謝恩使金叅判世弼閔耆伯偕赴燕京時華人聞而爭來以見必曰橘亭先生其爲,士林之欽仰推此可知可謂純明篤實之君子也公嘗爲注書時特承命徃卜相于領議政鄭光弼右相申用溉相公第而還詣復命曰論處
心行事唯安瑭爲最右相申用溉議曰若言職次則有金詮李繼孟然安瑭冝當遂以安瑭爲相盖公議賢瑭而及己卯禍作後時宰以爲前日卜相時申公薦李繼孟而公變辭復命云加罪幸賴聖明洞照不允庚辰竟罹北門之禍竄黜海南祿山驛中宗戊
戌傳于政院曰還給職牒叙拜全羅道都事、瓜遞辛丑除淳昌郡守門無滯訴德政治民中宗癸卯丁外艱哀毀過節幾至滅性服閲明宗乙巳十二月拜弘文舘副校理尋陞校理以母老辭退歸鄉里其後成均館司成累除不就絶意榮進日與崔柳兩公及林石川申靈川朴訥齋先生從遊經義講論教導子姪家傳忠孝遨遊山水吟咏自適以爲林泉之樂明宗己酉正月遭母夫人喪哀毀逾禮執喪過嚴赢瘠成疾而十二月二十四日卒享年五十五以子貴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經筵義禁府事弘文舘藝文|舘大提學知成均館春秋舘事墓海南郡北一面葛頭里山甲坐原配贈貞夫人平澤林氏進士畦女甲寅生明宗戊午八月十四日卒墓合葬有二男一女男曰弘中文禮曹正郎靈光郡守贈禮曹判書曰毅中議政府左參賽女適光山李仲虎監司後,配
贈貞夫人礪山宋氏判書載休女燕山庚申生明宗己未十月十六日卒墓三山面上駕里白岩洞子坐原有一男曰恭中僉知中樞府事贈戸曹叅判長男弘中無育姪唯幾爲嗣子次男毅中生三男三女男唯深長湍府使唯幾觀察使出系伯父後唯順奉事女適尹鞏參議申湜崔德明主簿三男恭中生六男五女男佐守門將倜訓導俔判官贈户曹參判儉縣監贈户曹參判健訓鍊院副正佑萬户女適李津朴案祖萬戶朴無競李振朴之鳳曾玄繁不錄猗與盛哉公之文章行誼孝行卓節可爲百世師表肅宗庚申以本道士林之建議配享于海村書院公十七
代胄孫亨植甫其族大父斗鉉雅士懼其先德愈久泯沒而袖奉先生遺稿要余狀德之文不敢以非文辭謹按家狀忘拙爲記如右以使知德者秉筆有稽焉
檀紀四參參壹年(西紀一九九八)戊寅端陽節

國史編纂委員會 史料調查委員
尹在振 謹識


橘亭先生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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