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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윤관련논문

해남삼강록(海南三綱錄)

조회 수 12 추천 수 0 2017.10.11 23:16:41
저자 : 장춘석 
출신학교 및 학위 : 호남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년도 :  

海南三綱錄


장춘석(호남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Ⅰ. 서론
 

유교국가인 중국과 한국은 고래로 三綱에 해당되는 忠ㆍ孝ㆍ烈에 관련된 많은 故事가 유전되어왔다. 그래서 집적된 이야기들을 시대에 따라 史書, 文學書, 雜錄 등에 수록하기도 하고 단행본으로 간행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이들 고사들의 민간전승이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들의 형태를 보면 신화적인 내용에서부터 전설, 史實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 忠ㆍ孝ㆍ烈 전 분야를 묶어 三綱이라는 題下에 단행본으로 나온 예가 全無한데 비하여 한국은 고려조부터 효행고사들만을 실은 {二十四孝圖}와 {孝行錄}이 제작되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 世宗朝의 {三綱行實圖}가 유포되면서부터는 三綱 중심의 책이 많이 만들어졌다. {續三綱行實圖}, {東國三綱行實圖}, {東國續三綱行實圖}, {東國新續三綱行實圖}, {五倫行實圖} 등이 이런 종류이다.

 

이들 삼강류의 제서에서 유형상 중국의 신화나 전설에서 史實중심으로, 인물상 중국인에서 조선인 중심으로, 종교상 儒彿 혼재에서 全的 유교로 전환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책들은 수록인물들을 증대시켜 분량만 무겁게 하였을 뿐 문학적 형상화에 이르지 못하고 번쇄하게 되었다. 


그런데 필자는 호남문화연구소의 일차년도 계획인 해남 녹우당 전적 정리를 수행하던 중 {海南三綱錄}을 찾게 되었는데, 읽어보니 기존 삼강류에 비하여 체제가 독특하고 구성이 잘 되어 있었다. 더구나 특정 한 지방만을 대상으로 한 경우, 필자의 管見에는 아직 들어온 적이 없기 때문에 상당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논문으로 써서 사계에 알리고자 하는 결심에 이르게 되었다.
 

Ⅱ. 구성
 

{海南三綱錄}은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삼강행실도}의 체제를 모방하여 해남의 충신, 효자, 열녀들의 행적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먼저 형태서지학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3卷2冊. 木板本. 四周單邊, 半郭: 21.5×16㎝, 有界, 10行19字, 版心: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30.5×21㎝
表題: 三綱錄
版心題: 海南三綱錄
序: 歲乙未(1895)重陽月幸州奇宇萬謹書. 歲乙未(1895)菊秋務安朴模謹序
刊記: 乙未(1895)季秋校宮開刊

 

이 刊記에 의하면 {海南三綱錄}은 1895년 고종 32년 해남 향교에서 간행된 것이다. 책의 순서를 정리하면 먼저 序가 오고 이어서 凡例가 있은 후 본편에 해당되는 충신, 효자, 열녀 고사들이 적혀있다. 본편이 끝난 다음에는 跋, 海南三綱錄諸有司名錄, 建置沿革誌附 순으로 되었다. 이 조목들로써 책의 편찬동기, 체제, 성격 등을 규지할 수 있으므로 그 대강을 소개하도록 하자. 먼저 두 序 중 奇宇萬의 것에 책의 편찬동기를 밝히기를
 

우리나라의 三綱錄은 中古以前에 편수한 것인데, 그 당시는 文治의 가르침이 날로 흥하였으나 그 뒤 빠뜨리고 편찬하지 않아서 점차 옛날의 형태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은 날로 쇠퇴하여 그 위세를 일으키지 못하지만, 어찌 이 수록의 흥폐가 세상이 크게 오염된 것과 관계가 있겠는가. 일찍이 續修하는 사람이 없음을 슬피 여기었는데, 이 일은 지극히 호한하여 한 사람의 총명과 박식으로는 마칠 수가 없는 것이다. 郡縣이 각각 삼강록을 만들어 가까운 곳에서 아는 것을 적는다면 온 나라 것을 續修하는 일은 앉아서 기다릴 수 있다고 가만히 헤아려보았다.


海東有三綱錄, 編修在中古以前, 時則文敎日興, 嗣後闕而不修漸不及古昔式. 至今日陵替不振, 豈此錄興廢有關世路之汚隆也. 嘗恨續修之無人, 而此事極浩漫, 有非一人之聰明博雅所可了. 當竊料郡縣各自爲錄, 擧爾所知, 則擧國爾爲續修之役, 可坐而致之.
 

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이 책은 세종조에 간행되었던 {삼강행실도}를 이은 것인데, 양자를 비교하면 체제와 구성에 있어서 異同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삼강행실도}가 효자, 충신, 열녀의 순으로 되어있는데 비하여, {海南三綱錄}은 충신 편을 맨 앞에 놓고 孝行, 烈行 편이 뒤에 온다. 충신, 효자, 열녀가 각각 일 권씩으로 총 삼권인데, 충신 편만 乾으로 하고 효행ㆍ열행 편은 묶어서 坤으로 하였으며 乾에 할애된 분량이 坤과 비슷하므로 편자의 관점이 무엇보다 충에 치중했음을 알 수 있다. 한말 혼란한 국가적 상황이 이러한 편집방식의 動因이였을 것이다. 이하 이 책의 수록기준은 凡例에 상세히 설명되었다.
 

一. 三綱은 인륜의 大義인데, 오직 오래 될수록 잃어버려 泯沒될까 두려워 모아서 기록하였다. 다만 本縣에서 그치고 다른 省의 것들은 함께 넣지 않았다.
一. 爲國之忠은 殺身成仁, 竭誠入節과 하나이므로 諸賢들의 이름 아래 그 찬미하는 말은 없애고 바로 그 실적을 적었다. 
一. 事親之孝는 盡性格天, 克誠無違와 하나이므로 諸公의 이름 아래 역시 찬양하는 말은 넣지 않았다.
一. 慕夫之烈은 下從秉彛와 承順極善과 하나이므로 諸姓의 아래에 찬미하는 글은 적지 않았다.
一. 순서는 연대에 의하고 실적은 다만 공안과 책의 기록에 의하되, 간결하고 굳센 문체로 썼다.
一. 가문의 덕은 두 세대만을 들었다.
一. 국난 사적은 史傳에 의한 연대를 따라 순서를 매겨 기록하였는데, 임진왜란의 사실부터 壬申年까지이다.
一. 충신이 먼저 오고 효자와 열녀를 그 다음으로 하였다.
一. 그 선조가 名賢ㆍ忠義로써 국사에 밝게 나타나 祠宇, 旌閭, 碑가 이 지방에 세워진 즉 某祠宇라는 세 자로써 표시하고 아울러 실적을 적었다.
一. 단종 때의 忠義者는 모두 이 지방의 충신ㆍ효자ㆍ열녀이므로 사실을 기록하고 [五賢祠宇]와 더불어 篇首로 삼았다.
一. 충신에 있어서는 순국한 사람을 먼저로 하고 공훈있는 사람을 뒤로 하였다.
一. 효와 열은 鄕道의 추천이 없었는데 은혜를 받음이 지나치고 事蹟에 의심이 드는 자는 기록에 넣지 않았다.
一. 鄕道의 천거가 있고 은혜를 받음이 없지만 행적이 명백하여 의심이 없으면 채록하였다.

 

책 뒤에 있는 발에서도 序와 마찬가지로 책의 편찬동기를 밝혀놓았다. 
 

아! 우리나라는 예와 의로써 천하에 알려져 있는데, 조선에서 백성의 조세를 경감해주는 덕을 베풀고 백성들을 가르치고 어루만지고 유도하고 부축한지 또한 이미 오백여년이 되었다. 세상에서 이야기하기를 호남에 충의 있는 사람이 많이 나왔는데, 우리 해남이 가장 많아 5ㆍ6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만력년간의 임진년과 숭정년간의 병자년에 천지가 요동칠 때 혹은 높은 신분으로 순절하기도 하고 혹은 백의로서 기병하여 한나라를 보필하고 주나라를 존중하는 선비들이 자취를 이어 나타났으니 예양군 임공, 수사 이공, 충의 이공, 옥강, 박공, 증참의 이공, 부윤 이공, 주박 윤공 등의 충의는 혼란에 처하여 행한 것이다.

 

화봉 이공, 금당 임공, 취죽 박공, 저헌 최공, 술부 윤공 등의 誠孝(성심에서 우러나오는 효)는 평상시에 살면서 행한 것이다. 열녀와 효부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할 뿐이다.(.....)

 

내가 약관에 노인들로부터 우리 고향의 충ㆍ효ㆍ열을 겨를이 없어 미처 집록하지 못한 것이 큰 결함이고, 오직 오래될수록 민멸되어 들을 수 없을까 두렵다고 말한 것을 들었기 때문에 지금 노인들에게 들은 바를 책으로 모아 임금께 바친다. (고종) 32년 을미년 계추 하순 완산인 이사풍이 삼가 발을 쓰다. 


噫! 我東以禮義聞天下而聖朝休養之德, 訓摩誘掖, 亦已五百有餘年矣. 世之譚者, 湖南多忠義, 吾鄕最得其五六分者也. 始萬曆壬辰崇禎丙子, 則天地板蕩之會而或顯位以殉節, 或白衣以起義, 輔劉尊周之士, 接跡而出, 若汭陽君任公, 水使李公, 忠毅李公, 玉崗朴公, 贈參議李公, 府尹李公, 主簿尹公之忠義, 處昏亂而行之也. 若華峯李公, 琴堂任公, 翠竹朴公, 樗軒崔公, 述夫尹公之誠孝, 居平常而行之也. 至於烈女孝婦亦然耳.(.....) 不 自在弱冠, 聞諸父老, 以吾鄕忠孝烈之未遑葺錄爲欠缺, 而惟恐愈久泯滅無聞云, 故今以所聞父老之言, 克篇上之. 三十二年 乙未季秋 下澣 完山人 李思豊 謹跋.

 

책의 뒤쪽에 부록처럼 붙어있는 海南三綱錄諸有司名錄과 建置沿革誌附 중 전자는 책의 편찬에 참가한 이들의 명단으로 都有司: 尹觀夏와 李思豊, 校正: 閔在鎬와 李濟遠, 收單: 崔漢榮과 朴琪德, 繕書: 金賢翼과 朴炳址 등이다. 그리고 후자 建置沿革誌附는 해남의 역사를 개괄해 놓은 것이다.


Ⅲ. 체재
 

위에서 {海南三綱錄}을 이루는 구성요소들에 관해서 알아보았다. 이제부터는 본문에 해당되는 충신ㆍ효행ㆍ열행 편들을 탐구할 순서인데, 먼저 목록작성을 함으로써 뒤에 오는 내용분석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
 

1. 목록
 

(1) 충신편

기실 이 책에서 충신편이라고 명명한 곳은 없고 祠宇, 忠義, 忠節을 묶어서 卷之一 乾으로 삼았다. 당연히 祠宇, 忠義, 忠節이 충에 해당하므로 필자가 충신편이라 부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세 항목은 다시 종류별로 세분된다. 

 

祠宇


五賢祠諸先生實錄(崔溥, 尹衢, 柳希春, 林億齡, 尹善道), 翠竹先生實錄효행편, 橘州先生實錄, 忠武祠諸賢實錄(李舜臣, 柳珩, 李億祺, 李有吉), 忠貞祠諸賢實錄(閔伸, 朴審問), 汭陽祠諸賢實錄(任發훈절편, 任謹효행편, 任忠훈절편), 三相祠諸賢實錄(金承 , 金宗瑞, 金 ), 英山祠諸賢實錄(李繼鄭순절편, 李淑亨훈절편, 李璜훈절편, 李珣훈절편, 李元海훈절편), 龍淵祠諸賢實錄(金廷彦훈절편, 金逢允훈절편)
 

忠義 


1)太祖朝忠義篇(朴義龍), 
2)端廟朝忠義篇(金宗瑞사우편, 閔伸사우편, 李英華, 朴從貞, 成熺, 朴審問사우편, 成聃壽, 金孝友)

忠節


1)忠義殉節편:

李繼鄭, 李桂年, 李善慶, 朴士吉, 任希進, 李有吉, 尹俔, 金光立, 吳廷達, 任天鑑, 任浚, 崔彦吉, 任湜, 金萬齡, 金城, 高夢龍, 申仁竣, 柳應春, 林興株, 


2)忠義勳節편:
李億福, 任希聖, 李淑亨, 任發英, 任忠幹, 金夢龍, 金安邦, 金廷彦, 吳弘績, 金廷允, 鄭士偉, 李璜, 金宗仁, 任達英, 李珣, 金安宇, 金廷玉, 李元海, 任峻英, 朴彭世, 李琥, 任自英, 金銑, 任永吉, 李成春, 朴大仁, 金渭, 李夢祥, 李廷臣, 尹琦.


3)丙子忠義편:
李浚, 李復吉, 尹善繼, 金永浩, 尹惟, 任國翰, 朴永繼, 金鍊之, 曺翼文, 李文述, 任興柱순절편, 皇明都督陳公實錄陳璘, 金中鉉. 이상 총 97명

 

(2) 효행편

任謹, 朴伯凝, 任卓英, 李文吉, 李光一, 尹善述, 尹績, 金東夔, 千厚賢, 崔弘立, 李愼言정려, 尹章緖, 方斗善정려, 金萬貴, 李再, 陳成發, 金定五, 金命麟, 任廷碩, 朴龍允, 尹德恒, 曺致鶴, 朴處洽, 閔致中, 崔永淳, 金漢文, 任茂材, 閔喆鎬, 任惠材, 任時達, 金興碩, 吳翰邦, 文秉寬, 任達儒정려, 金仁恒, 尹芳浩, 鄭志默, 曺錫昌정려, 金章瑚정려, 任泰煥, 任尙億, 金道喆, 金泳錫, 金德奎, 千寅赫, 金錫衡, 劉正烈, 尹順夏, 尹龍淵, 朴海鎭, 金舜采, 金正達. 이상 총 52명

 

(3) 열행편

林氏정려, 李氏정려, 崔氏, 金氏, 朴氏정려, 柳氏정려, 金氏, 崔氏, 林氏정려, 黃氏, 金氏, 奇氏, 金氏, 吳氏, 朴氏, 李氏, 金氏, 閔氏, 曺氏, 閔氏, 李氏, 乭今정려, 從伊정려, 姜召史정려, 玉盃, 仁常정려, 論化정려, 金氏, 閔氏정려, 金氏정려,孫氏, 崔氏. 이상 총 32명. 여기서 정려는 조정에서 정려를 세워준 사례를 일컫는다.

 

위 목록에서 작은 글자로 이름 오른 쪽에 쓴 것은 다른 편에도 실린 경우인데, 祠宇편의 翠竹先生은 효행편에 본명인 朴伯凝으로 표기되었다. 이와 같은 忠ㆍ孝ㆍ烈의 중복은 조선의 {三綱行實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충신편의 인물들을 여러 細目으로 나누는 방법도삼강행실도에 보이지 않는 {海南三綱錄}의 독특한 점이다. 그러나 효행편과 열행편에서는이러한 세분방법이 활용되지 않았다.
 

2. 분석
 

목록작성에 이어 각 조목의 세부사항을 알아보기 위하여 잘 알려진 朝鮮短歌의 명인이자 禮訟論爭으로 유명한 孤山 尹善道편을 인용하고자 한다. {海南三綱錄}에 수록되어있는 총 181인의 행적을 낱낱이 열거할 수는 없으므로 고산의 경우를 예로 들고 나머지 몇 편을 상호비교하면 비록 제한된 지면에서나마 그 전체적 양상을 규지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선도는 자가 약이요 호는 고산이며 해남사람이다. 귤정 윤구 선생의 증손 관찰사 창주 유기의 아들이다. 만력 정해(1587)에 한양 동부 연화방(지금의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서 태어났다. 공은 태어나면서 성품이 강직하고 마음을 세밀하게 썼다. 어려서부터 {소학}에 힘을 들였다. 혼조 때에 소학을 크게 금하였으나 공은 당시에 입을 수 있는 화를 돌아보지 않았고, 자세하고 깊이 연구하고 그 뜻을 음미하고 풀어냈으니 평생 실천력이 모두 소학에서 나왔던 것이다.

 

그 당시에 흉신들이 권력을 농단하여 종사가 장차 위험하려고 할 때 공이 진사의 신분으로써 일신을 돌보지 아니 하고 얼신 이첨을 참하라고 상소를 올려 경원에 안치되고 다시 기장으로 이송되어 무릇 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였다. 인조반정 후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가 상공 장유의 천거로 두 대군의 사부가 되었다. 효종이 봉림대군이었을 당시 6년간 머무르면서 학문지도에 전심전력하였으니 효종 聖學의 고명함은 다 전에 甘盤과 같은 고산에게서 수학한 공에서 나왔다고 한다. 癸酉년(1633)에 증광시에 합격하여 내외에 이름이 알려졌다.

 

병자호란 때 해남에서 난리터로 향했으나 강화도에서 바다를 앞에 두고 성 아래서 임금이 항복하였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배를 돌려 보길도에 복거하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하였으나 임금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았다는 죄를 물어 영덕에 유배되었다가 기묘년(1639)에 사면되어 돌아왔다. 효종 임진년1652)에 예조참의에 제수되고, {國是疏}를 올려 鄭困齋의 부당함을 상소했다가 탄핵을 받았다. 현종 경자년(1660)에 상소를 올려 나라 예의 잘못됨을 지적했다가 삼수에 유배당했다. 얼마지 않아 광양으로 이송되었다가 병오년(1660)에 사면되어 돌아왔다.

 

마침내 바다에 들어가 나오지 않다가 신해년(1671) 6월 부용동에서 향년 85세로 임종을 맞았다. 숙종 을묘년에 사판에 추증하고 무오년(1678)에 개정하여 국가의 전례에 의해 특별히 충헌이란 시호를 내렸다. 경오년(1960) 유생들의 소에 따라 서원 건립 명이 났다.


尹善道, 字約而, 號孤山, 海南人. 橘亭先生衢曾孫, 觀察使, 號滄洲, 惟幾子. 萬曆丁亥, 生於漢京東部蓮花坊, 公賦性剛直處心精白, 自小專用力於小學. 昏朝時, 小學爲世大禁, 而公不顧時禍, 精意參究沈潛演繹, 平生踐履, 皆得力於小學. 時群凶弄權, 宗社將危, 公以進士奔, 不顧身抗, 疏請斬 臣爾瞻, 安置慶源, 又移機張, 凡八年. 仁廟反正, 除義禁府都事, 不就, 張相公維薦, 拜兩大君師傅, 時孝廟在鳳林, 邸六年, 輔導盡心勸講, 孝廟聖學之高明, 皆源於甘盤舊學之功云. 癸酉中增廣及第, 歷敍內外, 丙子自海南赴亂, 至江都前洋, 聞有城下之盟, 遂回船卜居寶吉島, 欲遂其蹈海之志, 以不奔問, 逮配盈德, 己卯赦還. 孝宗壬辰拜禮曺參議, 上國是疏, 明鄭困齋, 被誣. 顯宗庚子, 上疏論邦禮之失, 安 三水, 尋移光陽, 丙午放還, 遂入海不出, 辛亥六月, 易 于芙蓉洞, 享年八十五, 肅廟乙卯, 贈吏判, 戊午釐正邦禮, 特命贈諡忠憲, 庚午因儒疏命建院.
 

{海南三綱錄}의 각 편들은 이 인용문에서 보듯이 먼저 인물의 인적사항을 쓰는데, 원칙적으로 이름→자→호→원적→조상→출생년→출생지 순으로 되어있으나 편에 따라 한두 가지가 빠지기도 한다. 이름은 한자 위로 올려 적어 제목을 대신하고, 조상은 두 세대를 적을 수 있으나 아버지나 증조 혹은 그 윗대 조상 중 유명한 분의 함자 하나만 적은 경우가 많다. 이어서 본론에 해당되는 생시의 대표적인 행적들이 나오고 끝에는 사후 贈諡 및 기타 국가로부터 받는 대접까지 적혀있다. 충신편은 앞으로 분석할 효행편과는 달리 사실에 근거를 둔 실제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효행편은 상기한 바대로 충신편처럼 細目이 없으나 효행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여기서 중국과 한국에 유포된 효행담의 성격을 한마디로 개괄한다면 '모험적인 효행담'이다. 부모사후 시묘하는 三年居喪, 부모임종시 피를 먹이는 斷指, 흉년이나 기아에 살을 베어내 부모에게 먹이는 割股, 부모의 건강을 점검하기 위해 대변을 맛보고 소변을 맛보는 嘗糞飮溺, 제철에 나지 않는 음식이나 약재를 구해드리는 음식ㆍ약재공양 등인데, 여기에는 지극한 효성에 천지신명이 감동하는 感應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임근의 경우 겨울에 아버지가 병이 나서 노루를 약으로 써야 하는데, 큰 노루가 집에 누워있고 죽순이 나며 상을 당해서 삼년시묘할 때는 호랑이가 지켜준다. 김인항도 같은 때를 당해 호랑이가 수호하고, 박처흡의 아버지 병은 살모사를 써야하는데 겨울에 구할 수 없자 雪野에 살모사가 나와 눕는 기적이 생기고, 민철호의 집에도 약으로 쓰일 너구리가 제발로 들어오며, 임혜재의 집에는 약재가 되는 꿩과 노루가 들어온다. 


임탁은 시묘할 때 黑石이 白石으로 변하고, 이문길은 겨울에 부모에게 드릴 얼음을 깨자 두 마리 큰 고기가 뛰어나오고 아버지 병에 돼지고기를 써야하는데 구할 수 없자 돼지가 갑자기 집으로 들어온다. 어머니가 盛冬에 물고기를 먹고싶어 하여 윤선이 얼음을 가르자 열 마리가 나오며 김귀, 김동기, 김한문, 김석형에게도 동일한 영험이 일어난다. 어머니가 죽어 발인할 때 큰비가 내려서 윤적이 분향기도하자 비가 그치고, 임정석의 집에 불이 나자 꿈에 몸을 짓누르는 것이 있어 깨어나 어머니를 구한다. 


박용윤이 시묘할 때 두 마리 꿩이 날아와 슬피 울며 방황하고, 임무재의 부모는 牧丹을 좋아하여 마당에 많이 심었는데, 상을 당해 牧丹이 모두 하얀 색으로 변하고, 문병관은 부모가 꿩을 드시고 싶어하자 꿩이 집으로 들어올 뿐 아니라 삼년시묘에는 마당의 붉은 복숭아와 작약이 모두 백색으로 변하였다. 임달유가 성묘하고 돌아올 때는 호랑이와 야귀가 옹호해주었다. 가난한 김인항이 부모를 봉양할 때는 새가 구슬을 물어다 주어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 된다. 김탕석이 시묘할 때는 주위의 고목이 된 동백에서 다시 꽃과 잎이 나온다. 등등
이렇게 모험적인 효행에 대한 보답으로 따르는 감응설화는 효도가 신령과 인간을 이어주는 주술적 요소를 동반하여 중국이나 한국의 원시시대부터 있어왔던 민간신앙이 민멸되지 않고 효도고사에 접목된 것이다.


다음 효행편에 이어 열행편을 보자. 열녀가 되는 조건 중 가장 많은 빈도를 차지하는 것이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는 '同穴'과 '下從'이다. 묘 옆이나 殯房 혹은 부부가 함께 쓰던 방에서 목을 매어 순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여자의 경우 관습적으로 성만 있고 그 이름을 쓰지 않는 관행을 따랐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 각각의 고사를 지적하지 않기로 한다. 목을 매지 않으면 독약을 먹기도 하는데, 이렇게 殉死하면 거의 정려가 보장된다. 열행편 전체를 통해서 보면 죽지 않는 경우는 반드시 늙거나 병약한 시부모나 부양할 자식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열녀가 될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乭今, 從伊, 姜召史 등 삼인은 다른 남자로부터 욕을 당하려 하자 자결하여 그 수절로 인하여 열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21번째 條인 李氏는 乙未年 난리에 도둑의 무리가 시아버지를 해치려고 하자 문에서 막다가 죽었다. 
이상은 出家女의 희생적인 자기희생담이고, 열행편 20번째 條인 閔氏의 이야기는 시집가기 전에 효행편에 빈출하는 割股를 하여 어머니의 병을 고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열행편에 집록된 고사 사이사이에는 늘 병약한 남편이나 시부모, 부모를 극진히 병간하는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나온다. 한편 감응이 생기는 부분도 있다. 즉 남편이 죽자 친오빠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개가하지 않은 10번째 條 황씨의 집에 저녁이면 호랑이가 나타나 창 앞에서 지켜주기를 삼년이나 하였고, 그녀가 81세에 죽었는데, 산에 불이 나 모든 묘가 다 탔으나 그 무덤만은 完存하였다고 한다. 18번째 條 閔氏는 시어머니를 물고 간 호랑이를 감동시켜 화를 면하게 한다. 그러나 감응이 소개된 것은 이 정도에 그칠 뿐 효행편과 같이 빈번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열행편에는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는다는 女必從夫의 관념이 짙게 배어 있다고 생각된다.


Ⅳ. 결론
 

먼저 잘 알려져 있는 {삼강행실도}와의 비교를 통하여 {海南三綱錄}의 특징을 考究해보도록 하자. 세종의 명에 의해 만들어진 삼강행실도는 그림을 넣어 각 한 편의 이야기 내용을 눈으로 보아 알게 하였고, 그 본문 끝에는 원문을 요약한 詩나 讚을 달아 놓았다. 성종조에 개편된 삼강행실도에는 효자ㆍ충신ㆍ열녀 각각 110씩으로 구성된 원본이 번쇄하다고 하여 각각 35인으로 줄이는 대신 한글로 번역하여 책 위 부분에 첨가하였다. 이와 같이 회화와 한글이 들어간 체재는 무엇보다도 글을 모르는 문맹자도 내용을 이해하여 삼강을 실천하게 하고자 하는 교화에 그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짜임새에 비하여 해남의 유지들이 발원하여 19세기 말 제작된 {海南三綱錄}은 비록 삼강행실도를 모방하면서도 이러한 독자의 보편성은 추구하지 않고 대신 자료의 보존성에 치중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글, 그림, 시ㆍ찬 등이 없고 심지어 句讀를 쉽게 하는 방점도 없으며 글은 簡古하여 읽기가 쉽지 않다. 대신 각 편 주인공의 生平이 삼강행실도보다 더 상세하게 쓰여진 전기 형식을 취하였다. 그리고 본문에 이미 밝혔듯이 孝ㆍ忠ㆍ烈의 순서를 취하지 않고, 忠을 독립시켜 따로 乾卷으로 하고 孝와 烈을 나머지 坤卷에 두었다.


한편, 삼강행실도가 중국전래 고사들을 발췌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을 소수 첨가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海南三綱錄}은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도 해남에 연고를 둔 인물들만 실은 것이다. 이러한 보존성, 수록인물, 체제 면에서 {海南三綱錄}이 갖는 자료적 가치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忠에 치우친 나머지 충신편처럼 인물들의 분류를 細目으로 처리하는 방식이 효행과 열행편에는 적용되지 않아 이점에서 편과 편 상호간의 일관성이 떨어지고, 19세기 말 격동의 시대에 살면서 전통적인 유교 가치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사상의 낙후함을 책의 행간에서 발견하면서 아쉬움이 남는다.


<참고문헌>
 

1. 원전저작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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