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는분 : | 12세 장악원정(掌樂院政公)휘 맹손(孟孫), 13세 목사공(牧使公) 휘 석(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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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 | 충남 당진군 합덕읍 도곡리 46번지 |
| 계통 : | 참의공(충남)파조 10세 사서(思瑞) - 1자 11세 참판공(參判公) 거(琚:1자) - 1자 12세 장악원정(掌樂院政公) 맹손(孟孫) - 1자 13세 석(碩) |
| 시제일자 : |



목사공 석 묘소

12세 장악원정(掌樂院政公)휘 맹손(孟孫),
13세 목사공(牧使公) 휘 석(碩)
증(贈) 호조참의공 10세조 휘 사서(思瑞)는 일자(一子)두었는데, 호조참판 11세조 휘 거(琚)로 참판공께서 삼남을 두어 장자는 당락원정 12세조 휘 맹손(孟孫)이요 중자는 휘 윤손(潤孫)이요 계자는 휘 시손(時係)으로 바로 우리 삼파의 나뉜바 인데, 참의공 장파는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도곡리 및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산동리에 중파는 해남군 계곡면 신평리에 계파는 완도군 약산면 관산리에 각각 세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장파의 13세조 석(碩)(諱억세)은 통정 대부 승정원 좌승지 행 길주목사를 거처 충주목사를 역임하였고, 아들인 14세조 희무(希武) 사헌부 감찰과 호조참판을 역임을 한 후, 고향인 전남 강진에 내려가지 않고 충주에서 생활하시었습니다. (묘소는 충북 중원군 상모면 토계리 왕답산 우좌에 두 분의 묘소가 있는 것을 약 350년만인 1968년에 찾아 1971년도에 도곡리 산 98번지 모시울에 천묘)
이후 15세조 부(溥)는 통정 대부 삼등현령 및 증 가선대부 병조참판을 역임하였고, 16세조 효국侾園)은 인조 정축년에 무과별시합격 후 도총부 도사 증 통훈대부 어해장군으로 계시다 중주를 떠나 경기도 진위현(지금의 평택)에 사셨습니다. 묘소는 경기도 평택시 지산동 산116-4호 및 5호에 있는 것을 260년 만인 1968년도에 찾아 관리)
이렇듯 우리 해남윤씨 목사공파가 조상의 묘소 실전과 동시에 세거지를 여러 차례 옮긴 것은 관직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난(兩亂)을 당하는 과정에서 15세조 부(溥)께서는 임금을 호종 從)하시었습니다
병자호란(1636년)당시 16세조 효국(孝國)의 아들 6형제중 5형제가 전란에 순국을 하시었고, 다행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17세조 후(候)께서는 당시 평택의 진위현 마을이 완전 불바다로 집이 다 타버려 쑥대밭이 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아마 그곳에서 살지 못하시고 인조때인 1637이후 난圖)을 피하시느라고 세보(世譜)를 구기(舊基)뜰에 매장(埋藏)하시고 훗일 난圓이 평정(平定)되면 다시 가셔서 찾기로 하시고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진위(현, 평택)를 떠나셔 충청도 합덕(現당진시 합덕읍 도곡리)에 오셔서 정착하시고 거주하시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약 30여호가 거주하고 각향객지에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